김동연의 책 한권을 읽고ᆢ한승헌 변호사님의 편린(片鱗)을 느끼다

2022.04.27

가디언21 | 기사입력 2022/05/02 [05:37]

김동연의 책 한권을 읽고ᆢ한승헌 변호사님의 편린(片鱗)을 느끼다

2022.04.27

가디언21 | 입력 : 2022/05/02 [05:37]

책 한 권을 잡자마자 통독(通讀,read through) 하는 일은 내 경우 흔치 않다.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김동연에게 관심이 가서 그의 저서 <있는 자리 흩트리기>(샘 앤 파커스, 2017년 초판)를 구해 봤다. 어제밤 순식간에 완독했다. 

 

최루탄. 여러번 눈물을 삼켰다.

 

특히 IDB(미주개발은행) 근무중 갑자기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 발견되었고, 스물일곱 다섯달에 세상을 뜬 장남 덕환.

그의 이름을 부르는 애비의 통곡과 단말마적(斷末魔的) '끄억끄억'에 가슴이 먹먹했다. 

 

고 3(덕수상고) 재학 중 은행시험에 합격하자, 33살의 남편을 잃고 홀로 네 자녀를 키우시던 어머니가 손뼉을 치며 덩실덩실 춤을 추시더라는 대목에서도 어김없이 눈물을 닦았다. 내 어머니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낮엔 은행원, 밤엔 대학생, 새벽엔 고시생. 그런 진흙탕에서 82년 야간대학 졸업하던 해에 행시(行試), 입법고시를 동시 합격한 뒤, 이를 "세게 한 반란이었다"고 표현하는 데서는  

유쾌, 상쾌함이 느껴졌다.

 

세 끼를 온전히 챙겨먹기 힘들었던 시절 자주 먹던 수제비, 외상으로 사던 됫박쌀, 낱개로 사다 썼던 연탄의 추억. 그리고 "보리밥이라도 좋으니 배터지게 한번 먹어봤으면 좋겠다"고 외쳤다는 고1 김동연 소년. 그보다는 훨씬 부자였지만 눈가를 훔치며 나의 10대 때로 돌아가보게 되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불세출의 투수 톰 글래빈, 145km의 구속으로 '사이 영(Cy Young)상'을 두 번이나 타고 통산 300승 이상을 올린 그가 남긴 명언, <절실함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You can't measure heart with a radar-gun)>를 좋아한다고 썼다. 멋졌다!

 

김동연은 기자를 했어도 대성했을 법 했다. 조어(造語)능력이 번뜩번뜩하다.

"깨어 있지 않으면 보지 못한다". 

 

미국  식료품 가게 종업원의 정직성을 보고 느낀 생각을 정리하며 내놓은 잠언(箴言), 깨어있어야 주위의 문제들이 보인다는 이 착상은 오늘의 김동연을 만든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머리 좋고 똑똑한데 사람 냄새 안나는 출세지향형 '뺀질이 관료'들과  경계를 짓게 하는 출발선은 깨어있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소소하고 작은 것부터 관심을 가지고 고쳐보려 노력하는 태도(attitude)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어 알파벳 A-Z에 각각 1-26점을 부여할 때, 100점이 되는 단어가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attitude. 태도, 자세가 그만큼 중요하자는 것이겠다. 

 

 '4단(端)' 중 하나인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고 저만 아는 관료는 나라와 국민에 해를 끼친다는 게 오랜 지론이다. 책에서 얼핏얼핏 느껴지는 김동연은 그 반대였다. 

 

잠시 책에서 벗어나 보자.

 

 

 


지난 21일 타계하신 한승헌 변호사님. 24일 추도식에서 

유가족을 대표한 차남 규무 씨(대학교수)의 답례인사가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다.

 

"아버님이 1975년 감옥에 가셨다가 8년만인 1983년 변호사 자격을 회복했지요. 그런데 첫번 째로 들어온 사건이 좀 알려진 분의 시국사건 변론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솔직히 이번에는 좀 안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끙끙 앓던 목소리를 내시던 아버님이 '내가 이걸 안하면 사람이 아니지'라고 혼잣말 하시는 것을 듣고 말았습니다. 

 

아버님은 세상이 말하는 용기, 소신, 강단으로 뭉친 '투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안타깝고 애틋한 사람을 '차마' 어떻게 외면하는가? 그 '차마'라는 단어가 아버님의 표상(表象)이요, 60년을 한결같이 사시게 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버님의 '명예'는 저희 자녀들에게는 '멍에'입니다. 그러나 저희도 안타깝고 애틋한 사람들 껴안으며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아버님이 남겨주신 가훈(家訓)은 '자랑스럽게  살진 못해도, 부끄럽게는 살지 말자'입니다".

 

감동, 또 감동이었다. 나도 울었고, 여기저기서 곡(哭)소리가 났다.

 

김동연 책의 끝부분 장(章)의 '멀지만  가야 할 길'을 읽고 이 사람이 내가 제일 존경하는 스승 한승헌 선생님을 조금은 닮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 장에서 "나부터  페어(fair)해야 한다"고 자계(自戒)하고 있다.

 

그가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반성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페어플레이를 강조한다. 우리 사회의 '싱크홀'(Sink Hole)을 메우려는 정책적 노력을, 어떤 정책의 부정적 영향을 뜻하는 'J커브'의 아랫부분 '약자 보호'를 주창하고 있다. 과문 탓인지 사회생활 시작한지 45년 째인데 진보당 관계자가 아닌 정통 경제관료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다시 잠시 샛길로 나가 한승헌 선생님이 감사원장을 맡게 되는 과정과 대체 얼마나 페어(fair)하셨는지를 알아보자.

 

먼저 선생님이 감사원장을 맡게 되는 과정에서는 인격 고매한 어른들의 유머 향연이 황홀하게 펼쳐진다.

 

고 박권상(朴權相) 전 동아일보 주필(전 KBS 사장)과 함께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공천을 준다 해도 절대 받지 않아 김대중 선생을 속상하게 했던 한승헌 선생이 1998년 3월 청와대에 간다. DJ가 묻는다. "한변, 교회 다니지요?" "예, 신자이긴 한데 사이비죠. 가다말다 그럽니다". "어떻든 믿는 사람이고, 크리스찬들의 3계명이 있지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알지요?" "예. 알긴 합니다만ᆢ". "그럼 됐어요. 감사원장 하세요. 그럼 날마다 '감사'하게 되지 않겠어요?ᆢ".

 

한 선생님의 후일담에 따르면 DJ가 그렇게 치고나오는데 달리 반박을 못하겠더란다.  

 

그렇게 63세에 평생 처음 해보는 전무후무한 관직을 맡으셨다. 그런데 일하면서 보니 정부 주요 공직자의 연령제한이 70세인데 감사원장만 유독 65세로 되어 있었다. 선생은 정부, 국회와 협력해서 70세로 바꾸었다. 

 

나를 포함한 지인들은 당연히 선생님도 4년의 임기를 다 하시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뿔싸. 선생님은  수정조항의 부칙에 "현재 재임하는 원장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적시해 버렸다. 그리하여 감사원장 임기 4년의 절반도 안되는1년 6개월 재임하고, 1999년 9월 표표히 물러나셨다. 감사원장 퇴임할 때 재산신고액이 8억2천만원이었다. 이 정도 페어(fair)하다면 더 보탤 말이 없지 않을까? 

 

그런데, 이리저리 탐문해본 김동연의 행각(行脚)에서 한승헌 선생님이 조금씩 겹쳐진다.

 

김동연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장관)을 했다.  그는 어느 날  "이런 정권에서 더 일할 수 없다"는 결심에 사표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고, 6개월을 더 버티다 칭병(稱病)하고 출근을 멈췄다고 들었다. 

 

그는 그 이후로도 박 대통령의 모 주요국 대사 제안도 거절하고 칩거생활을 좀 하다가 관직이 아닌 아주대 총장 제안은 수용했다. 

 

문재인 정부에  정통한 언론사 후배는 "김동연이 문대통령으로부터 총리 제의를 받고도 뿌리쳤다"며 "보통 사람이 아니다. 주목해 보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여부를 모르지만, 맞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지금까지의 경제관료들과는 결이 많이 다른 '희망 사다리'가 아닐 수 없다.

 

부총리를 그만둔 직후에 여러 로펌으로부터 한덕수 전 총리의 예우를 뛰어넘는 수준의 엄청난(?) 제의를 받았으나 모두 칼같이 거절했다고도 들었다.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 리더십' 연구의 대가인 김종두교수(국방대)는 다산이 강조하는  목민관의 첫 요건이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옳은 것만을 스승으로 삼는다(유선시사, 唯善是師)는 정신"이라고 강조한다. 

 

다산이 강조한 바람직한 목민관의 리더십은 1. 서번트(servant, 섬김) 리더십  2. 멸사봉공(滅私奉 公)의  리더십, 그리고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리더십.

선조들은 오래 전 지도자의 필수조건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과 함께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꼽았다. 

 

나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 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의(義)의 근본이라고 했다. 이 책을 닫으며 김동연에게서 '현대판 목민관'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책의 맨 마지막 두 장(章)은 2013년 10월 7일, 27살 다섯달로 생을 마감한 장남 덕환에게 바치는 단장(斷腸)의 절규이다.

 

그는 묻는다. "부모가 세상을 뜨면 자식을 '고아'라 부르고, 남편이 죽으면 '과부'라 부르는데  자식을 앞세운 부모는 호칭조차 없느냐"고. 없다. 굳이 만들자면 '참척(慘慽)을 겪은 부모'라고나 할까?

 

"덕환이 숨진 날, 내 삶의 시계가 멈춰버린 것 같다",  "통한의 눈물을 흘리다 그저 따라가 함께 하고픈 생각 뿐이었다", "서울대 병원으로 향하는 '혜화역 3번 출구'는 다시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덕환이가 떠난 뒤 꿈이 소박해졌다", "조금 먼저 간 아이를 따라 언젠가 가슴 벅찬 해후(邂逅)를 하는게 내 새 버킷리스트 맨 윗줄에 있는 소망이다". 김동연의 고백은 절절하다.

 

3남 2녀의 딱  중간인 내게 맨 윗 형님이 있었다.12살 때, 난 다섯살 때 그는 병원에도 못가보고 병사(病死)했다. 큰 형님 기일이 되면 어김없이 어머니가 신열을 앓는 것을 나이가 좀 들면서 알게 되었다. "워쩔거여, 지 명이 그것이라는디. 아, 워쩌겄어ᆢ". 어머니의 "워쩌겄어"를 들으며 '애가 탄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장이 녹고 끊어지는 듯한 괴로움이 바로 '참척의 고통'을 말한 것이었다.

 

1971년, 동아일보 자매지 '여성동아'에서 뒷날의 큰 작가  한 분이 탄생한다. 제 1회 여류 장편 공모 당선작 '나목(裸木)'으로 등단한 박완서(朴婉緖, 1931-2011).

 

서울대 출신이면서 6.25 때부터 미군부대 타이피스트로  일해 가족 생계를 책임졌던 그는 '참혹한 참척'을 차례로 겪는다.  

1988년 남편이 암으로 사망했고, 그 3개월 뒤 외동아들이 교통사고로 숨진다. 작가는 먼 훗날 "그것은 신을 부정하게 만드는, 도저히 씻겨지지 않는 불인두 같은 상처였다"고 회고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두 번의 참척을 겪었다고 한다. 50년 전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고, 2015년에는 장남을 뇌암으로 잃었다. 그가 왼쪽 손목에 차고 있는 묵주는 장남이 눈감을 때 찼던 묵주라고 알려졌다.

 

참척의 슬픔을 가장 진하게 감정이입(感情移入) 시키는 건 내 경우 에릭 크랩튼(77. Eric Clapton)이다.

 

그는 46세이던 1991년 맨해튼 고층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들이 떨어져 숨지는 참화를 겪는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그가 아들을 위해 만든 노래가 'Tears in heaven'이다. 

 

"Do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으로 시작하는 이 팝의 명곡. 클랩튼은 절규한다.

"묵묵히 남은 생을 완수하였다. 미치치 않으려면 노래를 불러야 했다ᆢ".

 

김동연은 이 책의 마지막 쪽에서 다시 하늘의 덕환이와 대화한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아빠"라고 했던 아들. 왜냐고 다시 물으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오늘의 아버지 모습으로 있는 것이 존경스럽다"고 했던 아들. 

 

그걸 아들에게서 받은 가장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여겼던 

덕환이의 아빠 김동연은  약속했다. "네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길을 계속 가고 싶다"고. "무언(無言) 중에 한 수많은 약속을 지키는 길을 가고 싶다"고. 

 

책을 덮으며 한 흙수저 출신의 성공 자랑질이겠지 하고 선입견을 가졌던 게 부끄러워졌다. 정통 경제관료에 대한 편견을 깨준 그가 고마웠다. 그의 미래에 행운을 빈다. 그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섬기는 공복(公僕)'이 되어도 좋을 사람으로 보였다.

 



* 사족: 한덕수 총리 후보자에게 이 책을 사서 보낼 예정이다. 

 

총리를 끝내고도 지족(知足)을 몰랐던 그. 무역협회장으로 3년간 23억원을, 김&장 고문으로4년3개월간 19억원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고도 73세에 두번 째 총리를 하겠다고 한다. 

 

행시 까만 후배(韓,8회. 金,26회)의 인간냄새 가득한 진솔한 글을 읽고 혹시 '후보 자진사퇴'라도 한다면 본인이나 나라를 위해 '윈윈'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 두번 째 사진은  미국 워싱턴대학(덕환이 다녔던 대학)에 있는 '김덕환 기념 벤치'. 책에 나와있는 사진입니다. 

 

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언실련) 공동대표/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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