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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서 뒤쳐지니 장수 길이 보여:가디언21

경쟁서 뒤쳐지니 장수 길이 보여

<명문가의 장수비결>(정지천 지음, 토트 펴냄)

편성희 기자 | 기사입력 2014/02/10 [15:47]

경쟁서 뒤쳐지니 장수 길이 보여

<명문가의 장수비결>(정지천 지음, 토트 펴냄)

편성희 기자 | 입력 : 2014/02/10 [15:47]

흔히 “중년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할 나이”라고 한다. 얼굴을 볼 수 있으면, 몸 상태도 확인할 수 있다. 치열하게 살아오다가 경쟁구도에서 밀릴 때, 그때서야 망가진 자신을 발견한다. ‘상대적 박탈감’은 갱년기가 심해지는 대표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반갑게도 선조들 역시, 지금의 중년들과 같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정지천(한의학) 동국대 교수가 쓴 <명문가의 장수비결>(토트 펴냄)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당쟁의 물살에 떠밀려 다니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귀양을 갈 경우 오히려 건강해질 수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관직에 있을 경우 기름진 음식과 과식, 잦은 술자리 등으로 몸을 해치게 된다. 타고난 몸의 리듬이 깨지면서 마음도 흐트러진 채 살아간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식사는 미덕이 아니라 성인병의 온상이었던 셈이다. 반면 억압된 상태인 유배는 형벌이지만 몸과 마음을 편히 하는 휴식과 명상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귀양을 가면 불가피하게 소식(小食)과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고, 거친 곡물과 푸성귀 등이 오히려 사대부들의 장수 비결이 됐다.

정 교수는 “조선 정조 시해사건에 연루됐다는 누명을 쓰고 1777년에 제주도로 유배를 간 정헌 조정철은 무려 27년 동안이나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한 최장기 유배수였다”며 “제주도의 좋은 공기와 함께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으며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는 88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책은 ‘청빈한 삶을 살아간 선조들 역시 건강을 유지하며 장수했다’고 기록했다. 청빈한 삶을 살았던 이들은 소식하며 기름진 음식과 술을 즐기지 않았다. ‘성호사설’을 쓴 이익은 형 이잠이 장희빈을 두둔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역적으로 몰려 47세로 장살되자 벼슬할 뜻을 버리고 첨성리로 낙향해 학문에만 몰두했다. 양봉과 양계 등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검소한 생활을 했다. 그가 조직한 삼두회(三斗會)는 콩죽, 콩장, 콩나물 등 콩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절식하자는 취지로 만든 친척모임이었다. 콩을 통해 단백질 부족을 극복했다. 이익은 후천적 노력을 통해 장수한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성생활도 사대부들에게 갱년기를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는 활력을 가져다줬다. 다산 정약용은 나이 40대 초반에 유배지에서 음식 수발을 들던 22세의 청상과부와 자연스럽게 몸을 섞었다. 그에게서 손자보다 어린 딸을 얻었다. 다산은 적당한 성생활을 즐기며, 갱년기 장애를 예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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